북 바에서의 특별한 만남
동네 커피빈에서 우연히 발견한 2024년 9월호 'MEN' 잡지에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 글은 북 바(book bar)에서 만난 한 손님에 대한 이야기로, 문학살롱 초고의 대표 김연지 님이 작성한 것입니다. 글을 읽으며, 저도 모르게 그 내용에 빠져들어 대부분을 발췌하게 되었습니다.
조용하고 씩씩한 손님들
저는 카페에 가면 항상 구석 자리에 앉습니다. 주인과는 음료 주문 시 필요한 대화만 나누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머무는 것이 편합니다. 카페는 저에게 군더더기 없는 작업 공간일 때 가장 편안합니다. 조용한 단골손님들은 주로 그 자리에 머물며, 그들의 조용함은 목소리의 데시벨이 아니라 '대화가 없음'을 뜻합니다. 이들을 위해 만들어낸 소소한 운영 원칙은 사이드 바에 앉은 분들에겐 먼저 말을 걸지 않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시선을 차단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작업자들. 그들의 등을 보며 저는 한 사람의 씩씩함이란 뒷목께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즈'도 조용하고 씩씩한 손님 중 한 명이었습니다. 매번 진 피즈를 주문해서 제가 붙인 이름입니다. 피즈는 초저녁 즈음 방문해 노트북 앞에서 골똘히 생각하다 막차가 끊기기 전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와 제가 대화를 나누는 순간은 하루에 두 번, 진 피즈를 주문할 때와 물 한 잔 부탁할 때뿐입니다.
팬데믹 속의 대화
팬데믹 시절,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막 시작된 어느 날, 개미 한 마리 없는 초고에 그가 첫 손님으로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사장님을 독점하네요."라는 말로 시작된 대화에서 그는 미국 대학원 입시를 준비 중이라는 것과 매일 초고에 와서 공부하는 게 자신과의 약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진도는 진척이 없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는데 난감한 항목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가 무엇인지'였습니다.
"사장님은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저는 "우리가 뭔가 대단한 실패를 하기에는 아직 어리지 않나요?"라고 답했습니다. 가장 큰 실패라는 질문은 참 영악합니다. 작은 실패를 큰 실패로 썼다간 엄살로 여겨질 것이며, 설사 큰 실패를 겪었더라도 곧이 곧대로 썼다가는 책잡힐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큰 실패 대신 작은 실패, 그러나 자랑할 만한 실패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피즈는 승마를 잘 배우지 못한 것과 조별 과제를 망친 것을 말했고, 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자 다짐하지만 매번 늦잠 자는 것을 말했습니다. 귀여운 실패들입니다. 주택 차고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을 미래의 스티브 잡스들을 누르고 합격하려면 좀 더 자극적인 이야깃거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손님 없는 홀을 보며 어쩌면 초고를 시작한 게 나의 가장 큰 도전이자 실패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아직 완전히 실패하진 않았지만, 실패의 길목에 있다고.
피즈의 부재
어느 때부터인가 피즈는 초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가 안 보인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도 한참 후였습니다. 피즈는 어디로 갔을까요? 그의 평범한 성실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말해주고 싶습니다. 언젠가 어떤 손님이 내게 이런 상황에도 참 씩씩하다고 말해준 적이 있는데, 그 말을 그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넘어지지 않는 게 아니라, 매일 넘어져도 일어나는 게 씩씩한 거라고. 마냥 밝은 게 아니라, 어떻게든 '밝으려고 하는 게' 씩씩한 거라고.
그런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피즈를 기다립니다. 언젠가 피즈를 만난다면 그가 어떤 실패를 썼는지 묻고 싶습니다.
송골매와 '어쩌다 마주친 그대'
글의 제목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검색하다가 송골매라는 밴드의 노래 제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송골매는 1979년에 결성된 대한민국의 록 밴드로,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1982년에 발표된 송골매 2집의 타이틀 곡입니다. 이 곡은 구창모가 작사, 작곡에 참여하여 <KBS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80년대를 록 음악 전성시대로 이끌었던 메가 히트곡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마무리
이 글을 통해 북 바에서의 특별한 만남과 함께 송골매의 음악까지 알게 되어 참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작은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